사업가가 아닌 의료인의 삶 - 1981년 종합건강진단센터 탄생, 새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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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드디어 유박영내과를 개설하고 질병 조기진단 조기치료 목적으로 종합건강진단센터를 설립했다.
당시 내가 내과 전문의가 되자 부모님이 종합병원을 세우려는 뜻을 품고 계셨을 때 나는 환자에게 편리하고 효율적인 진료만을 구상하고 개원을 준비하려 하였다. 그때 나의 그릇이 고정도였다. 종합병원은 부담스러웠다.
마침 전문의를 딴 그 시기가 최신 자동화 의료장비들이 외국에서 개발되어 우리나라에 첫선을 보이던 때이다. 그래서 개원을 준비하려니 여러 장비회사들이 각종 최신 검사 장비들과 시스탬 카달로그를 선보였다.
나는 서울대학교병원 내과 레지던트 시절 종합검사를 받기위해 대학병원 특실에 입원하여 하루 한가지씩 검사하고 일주일 후 퇴원하는 병원 12층의 VIP들을 보며 비용이나 시간이나 참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하다고 생각을 하였었다. 그런데 장비회사들이 보여주는 검진 최신 의료장비들을 다 구입하여 시스템화 하면 일주일 걸리던 종합검사를 3시간이내에 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웬만한 종합병원 건물 값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드는 그 모든 검진을 할 수 있는 최신장비들을 과감하게 다 구입하기로 하고 종합병원이 아니라 의원을 개설하여 이 모든 최신 장비들을 다 구입해 달라고 부모님을 설득하였다. 대학병원에도 아직 구비하지 못한 최신 자동화 검사 징비로 종합검진센터를 설립하는 데는 의원으로도 충분하였다. 바로 종합건강진단실 인테리어에 들어 갔는데 설계이며 설비며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당시 아버님께서는 장비 값이 병원건물 건축비 예산보다 더 많이 든다고 히셨다.
아버님이 무역을 하신 경험이 있어 장비회사와 협력하여 일부는 L/C를 직접 열어 수입했다. 안과 시력과 안저. 청력검사. 호흡기검사, 심전도. 복부초음파. 심장초음파. 위내시경, 위투시. 흉부 X-선, 복부 X-선, 자동화 임상검사장비 등 일체 종합건강진단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구입하기로 하고 장비수입 절차를 밟으면서 한편으로는 나는 목적이 있어서 종양내과에 도우미를 자청하여 전임의가 되었었다.
오전에는 교수님따라 회진을 돌며 암환자를 돌보고 오후에는 종합건강진단센터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모든과 임상분야를 돌며 연수의 기회가 되어 임상에 자신감을 쌓아갔다. 아버님께서는 병원 인테리어를 전담하셨다
그리고 낮에는 임상연수를 하고 밤에는 검진실 설계도를 펴 놓고 공간에 합리적인 동선으로 검사 순서를 매기며 밤을 새기도 하였다. 브로셔도 만들고 너무 즐거운 작업이었고 처음 행복을 느끼는 시절이었다.
철저한 준비 끝에 1981년 드디어 유박영내과와 함께 종합건강진단센터가 설립 되었다. 이런 최첨단 시설을 갖춘 병원을 알려야 할 필요성에 의해 조선일보 하단 전면광고로 종합건강진단센터를 소개 하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던 폭풍이 몰아쳤다. 무슨 그런 전대미문의 진료를 하느냐고 의료계 선후배들로부터 비난이 쏟아졌는데 사회 초년생이 검찰을 드나들어야하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10년 후 국민 소득수준이 올라가자 부자들의 과시심리를 겨냥하여 수련병원 서울대학교병원이 내가 설립할 때 환자의 편의만 생각했던 질병 조기진단 조기치료 목적인 본래의 취지와 상관없이 의료기관 수입원의 목적으로 비의료부분을 화려하게 포장하여 수련병원이 호탤사업으로 발전 시키는 모습을 보며 씁쓸하기도 하고 감회가 새로웠다.
1981 이후 개원가에서는 종합건강진단센터를 벤치하여 사업을 한 의사들은 크게 성공을 한 의사도 있고 개원가에도 그 숫자가 계속 늘어났다. 그리고 의료인 모임에 나가면 선배님이 길을 열어주어 의료법 관계없이 여러면에 간판을 자유롭게 걸게 되었다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들었다. 그것으로 검사 앞에서 필요한 의료라고 겁없이 항변했던 내가 옳았다는 판결을 받은 느낌이었다.
센터를 설립하고 비난도 많이 받았지만 와중에 같이 동업하자는 제의도 많이 받았다. 그때가 사회인 첫발을 띄며 첫단추를 끼는 때였다. 그때의 나의 선택은 돈이 아니고 환자였다. 즉 사업가의 길이 아니고 의학의 길을 택했다. 나는 내가 환자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수 있을까를 생각했고 나는 미래에 나의 건강을 지킬 나 자신에게 필요한 의료를 추구하였다. 그리고 내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을 때였다. 그래서 의학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카디오메타볼릭너리쉬에스테틱 유박영 M.D., Ph.D.
웰에이징센터
대표전화 02-54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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