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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하지 않은 길 웰에이징센터 웰에이징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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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공부를 더 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왔다. 개원하고 2년 후 1983년 6월 23일 아버님의 갑작스런 뇌졸중 발병으로 나의 삶은 내 뜻대로 살 수 없는 삶으로 바뀌었다. 아버님은 왼쪽 편마비가 오셨다. 아버님 어머님 세식구 만 살다가 아버님이 그렇게 쓰러지시니 어머님과 나는 모든 일상을 다 접고 전적으로 아버님의 간병에 전염하게 되었다. 한달쯤 지나니 많이 회복이 되시어서 물리치료실에서 운동화 신으시고 걸음 훈련을 할 정도로 회복이 되셨다, ...생략...

이주일쯤 후 2차 뇌졸중 발병으로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실로 모셨지만 점차 의식불명으로 들어가 인공호흡기를 걸고 밈을 콧줄로 투입하여 연명하시게 되었다, 이후 한번도 의식이 회복되지 못하시고 1988년 진달개 개나리 꽃피는 봄날 소천하셨다.

아버님의 투병은 병원 중환자실에서 호전되어 자력호흡이 되면 집으로 모셔 간병하고 악화되면 중환자실에 모시고 그렇게 병원과 집을 왔다 갔다 하시다 끝내 첫번째 뇌졸중으로 투병하시며 TV를 보시다 "내가 저 올림픽을 볼수 있을까? "하시던 88올림픽이 있는 그해 소천하셨다. 딸이 셋 있었건만 어머니와 단 둘이 임종을 지켰다. 당시 장례대행사도 없던시절 아버님이 생전에 알려주신 곳에 추모하는 아버님 시골 지인들이 홍대며 백토며 가져와 정성을 다해 합장 분묘를 만들어 주어 격식을 갖추어 헌토하고 고이 묻어드렸다. 분묘앞에 상석에는 돌로 성경책을 만들어 올려 놓고 김충현선생님의 글을 받아 비석모양도 내가 도안해서 세워드렸다. 평생 아버님곁에서 떠나지 않고 각별한 사랑을 받은 아버님과의 이별의 슬픔을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경건한 추모로 삭혔다.

1983년 ~1988년 그 기간 나의 삶은 완전히 내 의지와 상관 없는 삶이였다. 언니는 독일 동생은 미국으로 유학가서 의식불명 상태를 보고 다시 외국으로 나가 들어오지 않았다. 어머니와 나는 교대로 간병에만 몰두하여 아버님이 깨어나시기만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고 거역할 수 없는 운명적인 삶이였다. 점차 나는 낮에 외래 환자도 봐야했고 아버님이 하시던 사업도 계속관리 해야 했다. 이 와중에 아버님의 말씀하신 뜻과 어긋나는 사건들이 발생하여 시련은 계속 되었지만 의료 발자취와 관계 없는 지나간 과거는 여기서 생략하여야 겠다.

카디오메타볼릭너리쉬에스테틱 유박영 M.D., Ph.D.

웰에이징센터

대표전화 02-54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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